집에 관한 나의 첫 기억 아버지 간판 가게 아마 다음엔 건너편 사진관 단칸방에 세 식구 셋방살이 생각나지 가끔 먹었던 김밥용 햄 반찬이 아궁이 옆에 쌓인 허옇게 탄 번개탄 고무찰흙 한 줄이 꾸며낸 나의 온 세상 동네방넬 지나다녔던 휘파람 소년 벽지마다 공룡 그리던 연필과 탄 조명 이게 내가 자란 환경에 관한 단편 몰랐어 우리 집이 가난한 건 다만 반면 희찬이네 거실은 넓었고 우리 반 동성이는 끼니 때 고기를 먹었어 어린 동네 꼬마 머릿속에서만 몰아치고 맴돌았던 위화감은 비교에서 와 빈정대고 작은 자존심도 뺏어가 이렇게 기어이 되돌아온 어린 시절의 조각 어머니께 졸라 내 고삼 때 처음 산 회색 Force 한데 어째선가 죄송한 내 속 마음 이삼 년 후 닳아 떨어진 밑창 결국 맨발로 다니다 어느 공연 장에선 입장 거부 보면 아직 돋아있어 발밑 굳은살과 흉터까지 동료가 입은 협찬이 부러웠던 못난인 곧 딱히 중요하지 않다 여겨왔지 돈 따위 정작 지금도 사실 모르겠어 정답이 Solo 음반 매진 근데 첫 발매 뒤 내 통장에 찍혀있던 2810 잊어 본 적 없어 그 시커먼 숫자 네 개 아직도 손안엔 지켜온 Feature phone Taxi를 타면 날아가 내 Pay 중 반 홍대 광명 걷기 시작한 게 이십 대의 중반 그때 공연비로 15만 원 쥐어줬던 남자들 방사능에겐 항상 늘 감사를 날 감싸준 사람들 덕분에 점차 갖춘 향상을 나눠주고 싶어 조금씩 더 나아진 상황들 십수 년 전만 해도 희뿌연 현실은 볕 들어봤자 쥐구멍이라 생각했었는데 어느새 모인 저축에 결국엔 서울에 Apart도 구매 잘 하지도 않을 명품에 지갑을 여는 내 모습에 또 그때 숫자가 떠오르네 2810원짜리 인생이었던 그때